*저자 본인의 논문 인포보그’: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정보 기반 존재론 중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오늘날 인간 존재는 더 이상 고립된 자아의 실체로 전제되지 않는다.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인간은 자신의 감정, 기억, 신체, 행동 이력 등의 파편적인 흔적들을 통해 호출되고 있으며, 이 호출 구조는 단순한 데이터 수집의 메커니즘을 넘어서 정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전제한다. 일반적으로 “데이터 자본주의” 혹은 “감시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이러한 구조를 포괄적으로 지칭하지만, 이는 오히려 논점을 흐릴 수 있다. 왜냐하면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신호(signal)의 집합이며, 인간 존재가 호출 가능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 데이터가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되고, 선별되고, 의미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글은 ‘데이터 자본주의’가 아니라, ‘정보 호출 자본주의’로서의 디지털 자본주의를 분석의 핵심 구조로 삼는다.
저자의 논문에서 다루는 정보(information)는 데이터(data)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의 정보 이론에서는 정보가 불확실성의 감소량으로 수학적으로 정의되었지만, 이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는 기술적 정의였다. 이에 반해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은 정보란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the difference that makes a difference)”라고 정의하며, 정보는 해석자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 는 행위적 구성물이라고 보았다. 베이트슨의 관점에서 정보는 단순히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데이터의 반영이 아니라, 의미의 생성 가능성을 내포한 선택적 구조이며, 이 구조 속에서만 인간은 호출되고 존재할 수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정보적 호출 구조를 통해 작동한다. 인간이 디지털 환경에서 경험하는 모든 인터페이스는 데이터 그 자체를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화된 정보 패턴을 반복적으로 호출하고 예측하는 메커니즘이다. 알고리즘은 불특정한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패턴화 가능한 정보 구조만을 추출하고 연산할 수 있도록훈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 존재가 처음부터 ‘정보적 객체’로 전제된다는 점이다. 즉 인간은 감정, 반응, 클릭, 위치, 검색어 등의 조합을 통해 호출 가능한 상태로서의 존재로 재편된다.
디지털 플랫폼 환경은 인간의 감정, 기억, 신체 반응을 단순한 데이터로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호출 가능한 정보 패턴으로 구조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단순한 추출’이 아니라, 되풀이 가능한 반응 양식으로서 인간을 호출하는 방식이다. 감정은 주관적 체험이 아니라, 패턴화 가능한 정보로 가공되며, 그 정보는 다시 호출되고 순환된다. 기억 또한 신경학적이거나 정신분석적인 범주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알고리즘적 예측 단위로 환원된다. 신체 반응 역시 생체 인식 기술을 통해 호출 가능 한 정보로 변환되어, 특정 상황에서의 행동 예측을 위한 입력값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감정·기억·신체의 호출은 단순히 개인화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의 재편이다. 인간은 그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을 느끼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야 하고 기억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구조로 편입된다. 즉, 반응하지 않는 존재는 호출되지 않고, 호출되지 않는 존재는 사회적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단지 ‘정보화된 존재’로서 호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호출되지 않으면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조건으로 편입된다. 즉, 존재는 이제 ‘호출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호출되기 위해 인간은 지속적으로 감정, 기억, 반응, 위치, 클릭 등의 정보 흔적(trace)을 남겨야 하며, 이 흔적들이 없을 경우 존재 자체가 시스템 안에서 ‘비가시화’ 된다. 이 구조는 경제적 작동 방식에 기반을 둔다. 플랫폼 경제에서 사용자의 정보는 광고 타게팅, 상품 추천, 신용 등급 평가 등 다양한 형태로 상품화된다. 즉, 인간의 존재는 그 반응성과 정보화 가능성에 따라 경제적 가치로 전환될 수 있는지 여부에 의해 판단된다. 더 나아가, 호출구조는 정치적 조건과도 연결된다. 호출되지 않는 존재는 사회의 인프라적 구조에서 인식되지 않는 투명 존재가 된다. 공공 서비스, 보험, 의료, 교육, 고용 등 다양한 영역에서 데이터 기반 ‘디지털 정체성’이 행정적주체의 기준이 되며, 이로 인해 정보 존재로 호출되지 못한 개인은 실질적으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한다. 이는 곧, 정보 호출 구조가 새로운 형태의 정보 생명정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호출 구조는 단순히 기술적 효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조건의 변환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정보가 호출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며, 존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보를 ‘갱신’하고 ‘반응’해야 한다. 이처럼 디지털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통한 통제가 아니라, 정보화된 존재만이 호출되고, 호출되는 존재만이 사회적 실재로 간주되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인포보그는 바로 이와 같은 호출 구조에 응답하여 등장한 정보 기반 존재의 이론적 결과이다. 이는 단순한 정보 주체가 아니라, 호출 구조에 의해 생성되고 갱신되는 정보 존재로서의 정치적 실체를 내포한다. 인포보그는 호출되는 동시에 자신을 반복적으로 참조하고 연산하며, 그 과정에서 감정, 기억, 신체 정보, 패턴 등을 다시 출력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호출 가능성’은 오늘날 존재의 조건이자 통치의 방식이다. 인간은 호출되어야 존재하며, 존재하려면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제공된 정보는 다시 자신을 호출하는 알고리즘에 의해 연산된다. 인포보그는 바로 이 연산된 존재의 형식을 분석하고 저항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개념으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