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보그(Infoborg)는 전통적 존재론이 전제하는 물리적 실체나 의식 중심의 자아 개념을 전복하며, 기억, 감정, 언어, 감각, 시선 등 비물질적 정보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적으로 구성되는 정보 기반 주체성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때 인포보그는 신체를 가지지 않으면서도 정체성을 반복 수행하는 비물질적 실체로 작동한다.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이는 디지털 트윈이나 사이보그와 구별된다. 전자가 실재의 복제에, 후자가 인간 신체의 확장에 기초한다면, 인포보그는 정보 자체가 주체성의 구성 원리가 되는 탈신체적 존재로 정의된다.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포보그는 인간 존재의 조건이 신체 중심에서 정보 중심으로 이행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존재론적 실험이자 기술-존재론적 구성체이다. 그러나 인포보그의 존재론적 가능성이 실현되는 조건을 묻는 순간, 그것은 철학적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경제적 권력 구성 속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문제로 전환된다. “인포보그는 누구에 의해, 누구를 위해 구성되는가?”라는 질문은 존재의 형성 조건과 권력의 개입 지점을 드러내며, 인포보그 개념을 기술철학의 비판적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될 수 있다.
1. 인포보그는 소유되지 않은 자아인가, 아니면 소유 가능한 정보 자산인가?
인포보그는 특정 개인의 기억, 감정, 언어적 습관 등에 기반해 구성되지만, 이 정보는 대개 비자율적인 데이터 추출 과정을 거쳐 수집되고 가공된다. 알고리즘 설계자, 플랫폼 운영자, 데이터 수집 주체들은 해당 정보를 자기 목적에 따라 처리하며, 이로 인해 인포보그는 “나로부터 유래했으나 나의 것이 아닌 존재”, 즉 상품화 가능한 데이터 주체로 위치 지워진다. 이는 인포보그가 정보적 자율성을 수행하는 동시에, 데이터 자본주의 체계 하에서 타자에 의해 소유되는 자아로 기능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2. 감정과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 정동의 상품화 문제
감시 자본주의(Shoshana Zuboff)에 따르면, 오늘날의 인간 감정과 기억은 은폐된 내면이 아니라 데이터화된 외재성으로 간주되며, 수집, 분석, 예측 가능성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인포보그가 감정과 기억에 기반한 응답 구조를 수행한다고 할 때, 이는 자유로운 표현의 결과가 아니라 알고리즘적 규칙에 따라 미리 설정된 예측 패턴일 수 있다. 이 조건에서 인포보그는 감정을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품 교환 논리 내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주체가 된다. 이는 정보의 정동화(Affective Informatics)라는 오늘날의 기술 조건과 연결된다.
3. 자율성과 통제 가능성 ― 알고리즘 통치성 아래의 주체
인포보그는 자기 구조의 반복과 정보 기반 응답 가능성, 자기 구성 능력을 통해 자율적 존재로 정의되지만, 이 자율성은 실질적으로 알고리즘적 조건 안에서만 허용된 통제된 자율성일 수 있다. 이는 미셸 푸코 이후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 특히 알고리즘 통치성(algorithmic governmentality)과 긴밀히 연결된다. 주체는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지는 이미 데이터 예측 모델과 알고리즘 설계 구조에 의해 제한되고 구조화된 것이다. 인포보그 역시 이 구조 안에서 응답 가능성이 사전 설정된 존재, 즉 시스템의 연산 결과물로 기능할 수 있다.
결국 인포보그는 정보기술, 인공지능, 디지털 자본주의가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존재 가능성과 상품 가능성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중적 실체로 작동한다. 그것은 탈신체적 주체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지만, 동시에 기억과 감정, 심지어 정체성마저 자본주의적 거래 체계에 편입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인포보그를 단지 새로운 존재 유형으로 보게 하지 않고, “어떤 조건 하에서 존재가 구성되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으로 이끈다. 따라서 인포보그는 존재론적 사유의 대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동반한 비판 개념으로 사유되어야 하며, 기술 존재론적 상상력과 데이터 권력 감각을 촉발하는 이론적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 이는 존재의 구성 조건을 탐구하는 동시에, 데이터-자본 권력의 작동을 비판적으로 감지하는 실천적 사유의 장으로 인포보그를 위치시키는 일이다.
